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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고 항쟁 39년간을 비롯, 조선 인조 때의 병자호란 및 정묘호란을 피했던 곳으로 개화기에는 프랑스, 미국의 함대가 넘나들었으며, 일본의 운요호가 침입해 강화도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 방위를 위한 중요한 국방요지이며, 1977년 복원 및 보수작업을 마무리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광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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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성보는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 되었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돈대가 축조되었다. 영조 21년(1745)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按海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고종 3년(1866) 프랑스의 극동함대와 치열한 격전(병인양요)을 치르었으며, 고종 8년(1871) 미국의 아세아함대(신미양요)가 이 성을 유린하여 우리 수비군은 탄환 및 화살이 떨어지자 어재연장군 이하 전 장병이 백병전으로 맞서 용감히 싸우다 전인원이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광성보 내에는 신미양요시 순국한 순무천총 어재연, 동생 어재순의 쌍충비와 무명용사들의 합장 묘인 신미순의 총 그리고 1977년 전적지를 보수하고 세운 강화 전적지 보수 정화비 등이 있다.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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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 (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고종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 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해 우리 군은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안되는 열세한 무기로 외세에 대항해 싸웠던 것이다. 특히 일본군함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에 강압에 의한 강화도 수호조약(병자수호조약)를 맺어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고 또한 우리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 진에는 병마첨절제사 1인, 군관11인, 군사 320인, 전선 3척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다. 이곳은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으로 애국애족 및 호국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1973년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전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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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외성의 요충으로서 원래 수영에 예속된 첨사의 진(鎭) 이었으며 1677년 만호를 두고 군관 26명, 병 100명, 돈군 12명, 배 2척이 배치되었다. 1679년 축조된 용두, 덕진돈대 포좌 15문이 설치된 강화 제 1의 포대인 남장포대와 대포 10문이 설치된 덕진포대가 이 진에 소속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에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승리를 거두었고,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시아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여 미국 함대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당시 미군의 전사 속에 남북전쟁 때에도 이와 같이 짧은 시간 에 맹렬한 포격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미양요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 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면서 남장포대에는 조선군이 사용하던 대포를 제작하여 설치하였다.